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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사진문학스튜디오 무시

2021 문학주간 작가스테이지 <언어의 맛> 에세이 원문 공개_이에바

최종 수정일: 2021년 12월 7일





행복한 순간들

이에바




좁디좁은 비행기 안


기내 수화물 칸에 붙어 있는 작은 에어컨 구멍을 열어 살살 나오는 바람을 느낀다. 마스크 때문에 뜨거웠던 얼굴이 점차 식는 순간. 더위가 가시며 몸이 나른해지는 느낌이다.

잠시 졸고 있는 사이 다가온 식사 시간.


러시아 비행기를 타면서 식사를 해본 게 얼마 만인가... 은근 기대와 설렘을 품고 승무원이 권하는 소고기와 감자, 닭고기와 밥 중에 닭고기를 고른다. 원래 우유부단해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올 때마다 긴장되지만 이번엔 상당히 빨리 결정을 내린 스스로가 나름 자랑스럽다.

승무원이 건네주는 박스를 열고 안의 내용물을 본 나는 미소를 머금는다. 여행 가거나 뷔페를 갈 때면 꼭 먹는 모닝빵과 버터가 날 반긴다.


우선 닭고기와 밥을 먹어보기로 한다. 기내가 상당히 좁기 때문에 모든 동작이 조심스럽고 작아진다. 옆 사람을 치지 않으려, 음식을 흘리지 않으려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러면서도 과연 맛은 있을까, 나의 이런 노력이 헛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내 머릿속을 스친다. 그러나 닭고기를 한입 베어 문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나름 먹을만한 식사를 시작한다. 같이 나온 샐러드와 동그랑땡... 샐러드는 알겠는데 동그랑땡?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식은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편이라 이미 차가워진 동그랑땡은 아쉽지만 포기한다. 샐러드도 계속 흘리고 야채가 굴러 떨어져서 얼마 먹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를 기다리는 모닝빵 덕분에 기분이 좋다.


닭고기와 밥을 적당히 먹은 후 모닝빵 의식을 준비한다. 우선 모닝빵을 가로로 반 자른다. 버터팩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오늘은 모닝빵의 밑 부분을 먹기로 한다. 모닝빵이 호밀빵인 것은 기분 좋은 보너스다.


아직 음료를 나눠주는 시간이 아니므로 모닝빵에 천천히 버터를 바르기 시작한다. 시간이 넉넉해서 버터를 골고루 일정하게 펴 바를 수 있다. 빵 가로 버터가 나오지 않도록 다시 펴 바르고 또 확인하기를 몇 번 거듭하니 이제 제대로 발린 것 같다. 다행히도 식사로 나오는 디저트의 맛이 생각보다 괜찮다. 버터를 예쁘게 바른 빵을 잠시 두고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디저트를 먹는다. 디저트의 반을 먹어갈 때쯤 드디어 음료 카트를 끈 승무원이 내가 앉은 10D열 자리에 도착한다. 커피를 넉넉하게 많이 달라고 하니 승무원이 컵을 두잔 준다. 예상치 못한 발상이긴 하지만 이게 오히려 더 나은 듯하다. 아직은 좀 뜨거운 커피를 호호 불며 마시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커피가 식었을 때 비로소 내가 가장 기다려온 커피와 모닝빵 시식 시간이 다가온다.


우선 알고 보니 가염버터였던 버터를 바른 모닝빵을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게 베어 문다. 조금 짭조름하고 담백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빵을 삼키고 담백한 맛이 사라지기 직전에 서둘러 커피를 한입 들이킨다. 조금은 쓰고 고소한 커피의 맛과 금방 먹은 빵의 끝 맛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음미한다.


이를 서너 번 반복하니 역시나 자그마한 빵이라 모닝빵을 금세 먹어버리게 된다. 아직은 조금 남은 커피를 마시며 방금 전 행복의 순간을 되새긴다.

신기하게도 행복한 그 순간을 되새기는 시간마저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어 잠시 모든 동작을 멈추고 이 찰나를 기억에 새긴다.


모닝빵을 본 순간, 빵에 버터를 골고루 펴 바르던 순간, 빵을 잠시 내려놓고 커피를 기다리던 그 순간 그리고 마침내 먹게 된 이 순간들이 오늘 나를 행복하게 만든 일상 속 소소한 기쁨이었다.





* 한국어: 조금 짭조름하고 담백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 러시아어: Наслаждаешься приятным мягким вкусом булочки с маслом с легкой ноткой соли в конце.



** 한국어: 신기하게도 행복한 그 순간을 되새기는 시간마저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어 잠시 모든 동작을 멈추고 이 찰나를 기억에 새긴다.

** 러시아어: Как ни странно даже само воспроизведение в уме того мимолетного блаженства придавало ощущение такого счастья, что я решила приостановить все свои движения, и запечатлеть в своей памяти это мгновени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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